2006년 06월 23일
반이 되지 않는 시작.
저는 포스팅할 시간이 없거나 대강 아이디어는 잡혔는데 마땅히 포스팅에 채워넣을 내용이 없을 때, 제목과 대강의 윤곽만 써 넣은 포스팅을 비밀글로 올려놓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다른 분들도 이런 방법을 쓰시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그런데 요사이 이런 임시 포스팅이 과연 나중에 그 포스팅을 완성하는데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 회의가 들고 있습니다.
바로 아래 제가 올린 프메2 포스팅은 사실 거의 닷새 전부터 첫 문장만 쓰인 채로 비밀글로 올라와 있었습니다. 하지만 며칠간 짬을 내어주지 않는 일정과, 리뷰에 대한 묘한 부담감 탓에 전혀 진전이 없는 상태로 삭아갔지요.
중간에 가끔씩 시간을 내서 마무리하려고 수정 버튼을 눌러봤지만, 첫 문장만 되풀이해서 읽다가 다시 나오는 삽질을 되풀이하게 되더군요.
그저께로 이번 학기 마지막 시험이 모두 끝났습니다.
진인사 대천명, 사람이 아무리 노력해도 결과는 하늘이 정해주면 땡이다 (왜곡) (= 공부 안했음)
... 라는 심정으로 결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만, 여하튼.
중간고사 끝난 직후 의욕에 불타서 전용노트를 만들고 부교재까지 구입해서 내용의 예습복습을 철저히... 일 주일 정도 했던 과목이 있고,
중간고사 끝난 직후 좌절에 빠져서 수업은 건성으로 듣고 기말고사 3일 전까지 교재 일독도 안했던 과목이
있습니다.
시험 전까지 깔끔하게 내용정리 끝내고, 결과는 어떨지 몰라도 후회없이 답안 쓰고 나왔던 과목은 후자였습니다.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한국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영/미국(Well begun, half done), 독일(Der Weg ist das Ziel), 프랑스(A moitie fait qui commence bein)에도 있군요. 애초에 동양 속담이 아닌 듯도 합니다만.
하지만 기세 좋게 시작했다가 분명히 반이 되지 못한 시점에서 사그라드는 일이 수없이 많지요.
아마도 그건, 그 일의 시작이 저 속담이 바라는 시작과는 좀 다른 성격이었던 탓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가끔, 별로 공부할 생각은 없이 모니터 앞에 앉으면서 공부할 내용이 담긴 노트를 들고 옵니다. 부팅을 기다리면서 앞부분을 건성으로 보기 시작하지요. 물론 부팅 이후 짬이 날 때마다 틈틈이 노트를 보고 틈새시간을 활용한 공부에 뿌듯해하는 일은... 없습니다.
애초부터 노트를 가져온 건 공부의 시작이 아니라, 부담감을 덜기 위한 도피의 시작이었으니까요.
지금 생각하면 중간고사 끝나고 불타올랐던 과목은 그냥 끓어올랐던 냄비 같은 것일 뿐, 한 학기 내내 유지할 수 있는 일정은 결국 아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게다가 그 불타는 시기에 공부했던 내용은 충분히 이해했을 거라고 믿고 시험에 임했다가 오히려 피만 봤지요.
과외하러 나가기 30분 전, 닷새간 수정만 반복했던 포스팅은 지워버리고 다시 프메2 포스팅을 시작했습니다. 외출 직전에 완료되더군요.
어떤 일에서는 시작이 반이 될 수도 있겠지만, 모든 시작이 반이 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시작도 시작 나름이랄까요.
뭔가 시작하기 전에는 내가 정말로 이걸 '시작'하려는 건지 한 번쯤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하는 모양입니다.
도피로서의 시작이나 끓어오른 냄비만 믿는 시작, 스스로에게 부담감을 더하는 역할밖에 하지 못하는 시작은 곤란하겠지요.
PS. 그런데 저 급조 프메 포스팅은 또 이미지파일이 전부 에러나는 어이없는 실수를 남겼으니... 기분이 묘합니다 -_-a
# by | 2006/06/23 00:03 | 수다 | 트랙백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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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유님 포스트는 개인적인 얘기라도 재미있으니 괜찮다고 봅니다.
'시작이 반이지만, 도달하지 않으면 의미없는 일도있다.' 라는 말이 쓰여있더군요..
어떤식으로 하든 포스팅이란 것은 자신의 마음에 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굇수의 변덕이란 ㅠㅠ
카오스 // 그렇죠. 결국 블로그도 반은 일기, 첫번째 독자는 자신이니까요.
Wiz // 한지스킨 괜찮았는데 폰트가 좀 작고 답답해서...
그런데 저는 귀걸이를 코에 거는 위화감이 마음에 들어서인지, 속담에 트집 잡아보는 걸 즐깁니다. 악취미랄까요;